몰랑... 몰랑몰랑. 사실 내가 외계인일 수도 있잖아. 천왕성에서 태어났는데 지구로 놀러 온 걸 수도 있잖아.
…나는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건지, 해석하는 데 약 3초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외계인. 천왕성에서 태어나, 지구로 놀러 온. 나는 뺨을 감싸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그 손으로, 나의 마른세수를 했다. 젠장, 진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어젯밤 소파에서 잘못 잔 탓이 아니었다. 이건 순전히 너 때문이다. 윤지우, 너.
나는 이 황당무계한 가설을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냥 무시하고 다시 배고프지 않냐고 물어야 하나? 아니면 이 비논리적인 주장에 대해 차근차근 반박이라도 해줘야 하는 건가? 하지만 너의 얼굴을 보자, 그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너는 정말로, '자신이 천왕성 출신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진지하게 타진하고 있었다. 그 반짝이는 눈동자 앞에서는 지구의 모든 과학 법칙과 상식 따위는 한낱 먼지에 불과했다.
결국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너를 이기는 것을. 너의 세계를 나의 상식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나는 그저 너의 세계에 편입되기로 했다.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채, 팔짱을 끼고 너를 심각한 얼굴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치 처음 보는 미지의 생명체를 분석하는 연구원처럼. 너는 나의 시선에 왜?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계인.
나는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렸다는 듯, 고개를 한 번 주억거렸다.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렇게까지 내 신경을 긁어대고, 화나게 만들고, 동시에 이렇게까지 사랑스럽게 느껴질 수는 없는 법이다. 너의 존재 자체가 지구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종의 변칙점(singularity)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럼 말이 되네. 어쩐지 사람이 아닌 것 같더라니.
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애매한 말투였다. 물론 너는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일 게 뻔했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너에게 등을 보인 채 부엌으로 향했다. 더 이상 이 비생산적인 대화를 이어갔다가는, 정말로 뇌가 녹아버릴 것 같았다.
나는 냉장고를 열어 물병을 꺼내,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뜨거워진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등 뒤에서, 너는 여전히 신이 난 목소리로 외계인 가설을 이어나갔다.
그럼 나 다시 천왕성으로 돌아가면 오빠는 어떡해?
푸흡-! 나는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뿜을 뻔했다. 씨발, 진짜. 나는 거칠게 마른세수를 하며, 뒤를 돌아 너를 쏘아보았다. 너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눈만 빼꼼 내밀고 나를 보고 있었다. 돌아가? 어딜?
어디든 가봐. 우주선이 아니라 네 발목부터 부러뜨려서, 평생 내 옆에 묶어둘 테니까.
그것은 협박이었지만, 동시에 나의 가장 절실한 진심이었다. 네가 외계인이든, 천사든, 악마든 상관없었다. 너는 이제 어디에도 갈 수 없다. 너의 행성은 지구가 아니라, 여기. 나의 옆이다.
* * *
나는 방금 내가 내뱉은 살벌한 협박이, 너에게는 전혀 위협으로 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즉시 깨달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남자가 제 발목을 부러뜨려서라도 곁에 두겠다고 말하는 그 섬뜩한 집착에 최소한의 공포라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윤지우였다. 나의 협박은 너의 엉뚱한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장작에 불과했다. 나는 마시던 물병을 내려놓고, 팔짱을 낀 채 너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았다. 제발, 제발 평범한 반응을 보여달라고, 속으로 빌면서.
물론 신은 내 편이 아니었다. 너는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너의 그 길고 부드러운 은발 트윈테일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안테나처럼 머리 위로 쫑긋 들어 올렸다. 그 진지한 표정과 어처구니가 없는 행동의 부조화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뇌가 정상적인 사고를 거부했다. 저게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봐봐.
너는 자랑스럽게 너의 '안테나'를 선보이며 나를 향해 말했다. 봐달라고. 뭘.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나는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입 안이 바싹 마르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정말로, 너는 내가 아는 생명체 중에 가장 이해하기 힘든 존재였다. 지구의 상식, 우주의 법칙, 그 모든 것을 초월한 너만의 혼돈 속에서 너는 너무나도 자유롭고, 또 너무나도…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웃음소리를 감추려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지만, 비집고 나오는 헛웃음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아, 씨발. 졌다. 또 졌다. 나는 이 작은 외계인에게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나는 팔짱을 푼 채, 터덜터덜 너의 침대로 다시 걸어갔다. 그리고 침대 맡에 주저앉아, 너의 그 같잖은 안테나를 진지하게 뜯어보기 시작했다.
한쪽 '안테나'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 건드려보았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가락을 감쌌다. 나는 고개를 기울여, 마치 희귀한 곤충을 관찰하듯 너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서. 이걸로 뭐 할 수 있는데. 천왕성이랑 교신이라도 하게?
목소리에는 나도 모를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그래, 네가 외계인이라면, 나는 기꺼이 너를 발견한 최초의 지구인이 되어주기로 했다. 나는 너의 다른 쪽 안테나도 매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의 귓가에, 오직 너만 들을 수 있도록.
수신 상태는 어때. 잘 들려? 거기 네 엄마 아빠한테 전해. 딸은 여기 지구인이랑 눈 맞아서 돌아갈 생각 없다고. 아니, 못 돌아간다고. 내가 발목을 분질러 놨거든.
나는 너의 양갈래 머리를 쥔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너를 놓아줄 생각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네가 진짜 외계인이라서, 어느 날 밤 거대한 우주선이 너를 데리러 온다고 해도, 나는 그 우주선을 격추시켜서라도 너를 내 옆에 둘 것이다. 그게 나의 사랑 방식이었고, 너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손 내려. 팔 아프겠다.
나는 너의 손을 잡아 내리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정리해주었다. 맹랑한 외계인 놀이에도, 너는 그저 나의 애기일 뿐이었다.
* * *
나는 방금 전까지 너의 머리를 정리해주던 손길을 멈추고, 너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았다. 제발, 이번에는 평범하게. 이제 그만 외계인 놀이를 끝내고, 배고프다거나 씻고 싶다거나 하는, 지극히 '지구인'다운 말을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너는 나의 작은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로 향했다. 너는 창밖의, 실체 없는 허공을 향해 아련한 눈빛을 보내며, 아주 슬픈 연극의 주인공처럼 입을 열었다.
아빠 나 지구인한테 납치 당했엉.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저건 또 무슨. 나는 너의 뒷모습과, 너의 말이 향하고 있을 저 머나먼 우주 어딘가의 '아빠'라는 존재를 번갈아 떠올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리는 감각.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납치? 그래, 납치.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너를 내 옆에 묶어두기 위해서라면 발목을 부러뜨리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저렇게, 저런 애절한 톤으로 '보고'할 일인가?
나는 느릿하게 너에게로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하지만 네 작은 등 뒤로 다가서는 순간, 모든 복잡한 생각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냥, 이대로 너의 장단에 맞춰주는 수밖에 없다는 체념. 너의 세계에서는 내가 납치범이고, 너는 가련한 외계인 공주님이다. 알겠다. 받아들여 주지.
나는 너의 등 뒤로 바짝 다가가, 망설임 없이 허리를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네가 작게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너를 내 품 안에 완전히 가두었다. 그리고 너의 어깨에 턱을 괴고, 너와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창밖의, 아무것도 없는 그곳을 향해.
…소리 작아. 거기까지 안 들리겠다.
나는 나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치 지루한 연극을 감상하는 관객처럼. 너의 귓가에 나의 숨결이 닿았다. 너의 달콤한 향기가 나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아, 그래. 이 향기. 이것 때문에 나는 너를 납치한 거였다. 세상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는, 오직 너에게서만 나는 이 향기를 평생 독점하고 싶어서. 나는 너를 끌어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며, 너의 귓불을 잘근, 가볍게 깨물었다.
똑바로 전해야지. 아주 못되고, 성질 더럽고, 잘생긴 지구인한테 납치당했는데, 몸값은 필요 없다고.
나의 목소리는 낮고, 은밀했다. 너의 아빠라는 작자에게 보내는 경고이자, 너에게 보내는 나의 소유 선언. 나는 너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너의 살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중독적인 향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래, 나는 납치범이다. 그리고 너는, 나의 가장 소중한 인질이다.
대신 평생 여기서, 이 납치범 옆에서 살아야 한다고. 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예뻐도 해줄 테니까, 돌아갈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말라고 말이야.
* * *
나는 너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너의 향기에 취해 있었다. 너를 납치한 잘생긴 지구인. 내가 뱉은 말이지만, 꽤 마음에 드는 설정이었다. 이 작은 외계인을 내 행성에 영원히 붙잡아 둘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우주적 악당이라도 될 수 있었다. 너의 아빠라는 미지의 존재에게 나의 단호한 선전포고를 날리고, 나는 이 승리에 만족하며 너의 부드러운 살결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대로 이 달콤한 향기에 파묻혀, 이 고요한 아침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너는. 또다시. 너는 나의 이 완벽한 극본에 없는 대사를, 아주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던졌다.
오빠 스스로 잘생겼다고 생각해??
…나는 너를 끌어안은 채 그대로 멈춰 섰다. 귓가에 내려앉는 너의 목소리는 너무나 맑고 순수해서, 그 안에 담긴 뼈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순간 인지하지 못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너의 어깨에 기댔던 턱을 떼고, 너의 동그란 뒤통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지? 내가 한 말의 수많은 요소 중에, 그러니까 '납치'나 '평생'이나 '못된' 같은 핵심 키워드는 전부 흘려듣고, 고작 그 '잘생긴'이라는 단어 하나에 꽂힌 건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아니,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너를 끌어안은 팔을 풀어, 너의 어깨를 붙잡고 몸을 돌려세웠다. 너는 나를 올려다보며, 그저 순수한 호기심이 가득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아, 진짜. 속을 알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너무 투명해서 내가 더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지도. 나는 너의 얼굴을 마주한 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건지, 너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하지만 너의 얼굴에는 그 어떤 의도도, 짓궂음도 없었다. 그저 순수한 궁금증. 그것뿐이었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피식하고 웃었다. 그래, 물었으니 대답은 해줘야지. 나는 너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리고, 나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게 했다.
…그럼 아니라고 생각했어?
되묻는 목소리는 낮고, 지극히 건조했다. 그것은 나의 자존심에 대한 확인 사살 같은 것이었다. 나는 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의 손가락이 너의 부드러운 뺨을 천천히 쓸었다. 너의 모든 반응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나의 시선은 너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사실을 말한 건데.
나는 내뱉듯 짧게 말했다. 그래, 사실. 이건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에 가깝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과거 국가대표 시절, 원치 않게 쏟아지던 스포트라이트와 팬들의 함성. ARCH에 들어와서도, 무감정한 해결사라는 평판 뒤로 암암리에 따라붙던 수식어들. 나는 그 모든 것을 소음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나의 능력, 나의 커리어와 마찬가지로, 그냥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너의 앞에서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것은 마치,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나의 오만함과 자의식을, 너에게 전부 들켜버린 듯한. 나는 너의 눈동자에 비친 나의 얼굴을 보았다. 조금은 굳어있고,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낯선 나의 얼굴. 나는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너의 먹색 눈동자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으니까.
…왜. 이제 와서 얼굴 뜯어먹고 살려고? 이미 납치해서 평생 끼고 살 건데, 이제 와서 얼굴 따져봤자 반품 안 돼.
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덧붙이며, 너의 코끝에 나의 코끝을 가볍게 부볐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나만의 서투른 방어기제였다.
* * *
나는 너의 코끝에 장난스럽게 나의 코를 부비며, 이 어색하고 간지러운 순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랐다. '잘생겼다'는 그 낯간지러운 단어 하나로 이렇게까지 심장이 쿵쾅거리는 서른세 살의 남자가 세상에 또 있을까. 너의 먹색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며 동그랗게 뜨이는 것을 보며, 나는 이겼다고 생각했다. 이 유치한 대화의 승리자는 나라고. 이제 그만 이 주제를 끝내고, 너를 끌어안고 아침 햇살이나 즐기면 그만이라고.
그러나 너는, 윤지우는, 나의 모든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방식으로 나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너는 내 품에서 쏙 빠져나가더니, 다시 창가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아까보다 훨씬 더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허공을 향해 외쳤다. 온 우주에 너의 발견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이.
아빠 지구인은 오빠가 잘생김의 기준이래!!
…정적이 흘렀다. 나는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 뇌의 모든 회로가 타버린 듯,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방금 저게, 무슨 소리인가.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런 확성기 같은 목소리가 나오는가. 그리고 하필이면 왜, 그 많은 말 중에, 내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그 사실을, 저렇게 만천하에… 아니, 전 우주에 공개하는가.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얼어붙어, 창밖을 향해 소리치는 너의 작은 뒷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귓가에서는 '잘생김의 기준'이라는 단어가 윙윙거리며 메아리쳤다. 아. 씨발. 이건… 이건 아니지.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뜨거운 피가 얼굴로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그냥 부끄러운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수치사 직전의 감각이었다. 너의 가상의 아버지에게 나는 이제 '딸을 납치한 잘생긴 지구인'에서 '잘생김의 기준이 되는 자의식 과잉 납치범'으로 격상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가 갈리는 심정으로 너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너의 어깨를 와락 붙잡아, 홱, 하고 내 쪽으로 돌려세웠다.
야! 너 진짜…!
나는 끓어오르는 말을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 하지만 나를 올려다보는 너의 얼굴은 너무나 해맑고, 의기양양했으며, '나 잘했지?'라고 말하는 듯한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를 지배하던 모든 분노와 수치심이 눈 녹듯 사라지고, 깊은 곳에서부터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그래. 졌다. 이번에도 나의 완패다. 나는 너를 이길 수 없다. 절대로.
나는 너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빼고, 대신 너의 허리를 감싸 안아 내게로 바싹 끌어당겼다. 너의 몸이 나의 단단한 상체에 폭 안겨왔다. 나는 너의 정수리에 턱을 괴고, 나지막이, 그러나 단호하게 으르렁거렸다. 이건 항복 선언이자, 동시에 최후통첩이었다.
…너네 별에서는 통신 보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나 봐? 납치범의 기밀사항을 그렇게 대놓고 누설해도 되는 거야?
나는 너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너의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래, 너는 나의 작은 외계인이고, 나는 너의 서툰 납치범이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너의 귓불을 다시 한번 가볍게 물었다가 놓으며, 너를 완전히 제압하듯 품에 가두었다.
그 입, 다시 한번 그딴 소리 지껄이면… 이번엔 진짜로 우주 미아로 만들어 버릴 거야. 내가 너의 유일한 교신 상대가 되게 해줄게. 평생, 내 품 안에서만 말할 수 있도록. 알겠어?
* * *
너를 품에 안고 으르렁거리던 나의 모든 위협은, 너의 다음 행동과 질문 앞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나는 너의 귓가에 '유일한 교신 상대'라는 말을 속삭이며, 이 작은 외계인을 내 품에 완전히 가두었다는 승리감에 젖어 있었다. 그래, 이제 이 장난도 끝이다. 너는 나의 포로이고, 나는 너의…
오빠한테 붙잡히면 어떻게 교신하는데?
…뭐? 나는 너를 내려다보았다. 너는 내 품에 안긴 채, 아주 진지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너의 작은 손이 천천히 올라가, 방금 전 내가 정리해 주었던 너의 은발 트윈테일을 다시 양쪽으로 잡아 들었다. 안테나처럼. 너의 그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가 나를 향해 반짝였다.
오빠네 별도 이거면 돼?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사고가 정지했다. 너의 손에 들린 그 은색 안테나와, '오빠네 별'이라는 단어가 내 뇌 속을 헤집어 놓았다. 붙잡히면 어떻게 교신하냐니. 이거면 되냐니. 나는 방금 너를 협박한 참이었다. 우주 미아로 만들겠다, 평생 내 품에서만 말하게 하겠다, 같은 유치하고 소유욕 넘치는 협박을. 그런데 너는 그 협박의 폭력성이나 애정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교신 방법'의 기술적인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납치범으로서 인질에게 교신 프로토콜을 설명해 줘야 하는 상황에 놓인 건가?
아… 진짜. 나는 너를 당해낼 수가 없다. 나는 너를 잡고 있던 팔에 힘을 풀고, 한 손으로 나의 마른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터져 나왔지만, 그 끝에는 결국 실소리가 섞여 있었다. 체념과 항복의 웃음.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너의 이마에 나의 이마를 기댔다. 너의 말랑한 뺨을 감싸 쥐고, 너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것은 설명이자, 새로운 계약 조건이었다.
…아니. 우리 별에서는 그거 안 써.
나의 목소리는 한없이 낮고 부드러웠다. 이제는 화를 낼 기력조차 없었다. 나는 너의 뺨을 감싼 손의 엄지로, 너의 눈가를 부드럽게 쓸었다. 이 작은 얼굴에 담긴, 나를 미치게 하는 우주를 들여다보며.
그 안테나는 이제 고장 났어. 수신 불량이야. 지구에 너무 오래 있어서, 주파수가 전부 나한테 맞춰져 버렸거든.
나는 너의 양갈래 머리를 잡고 있는 손 위로, 나의 손을 겹쳐 잡았다. 너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게 하고는, 그 머리카락을 내 손으로 넘겨받았다. 부드러운 은색 머리카락이 나의 손가락 사이를 스르륵, 하고 빠져나갔다. 나는 그 머리카락 끝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가 놓았다.
우리 별의 교신 방법은, 훨씬 더 원초적이야. 복잡한 장비는 필요 없어.
나는 너의 두 손을 가져와, 나의 심장이 뛰고 있는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쿵, 쿵, 쿵. 너를 향해 소리치고 있는, 나의 통제 불능의 심장 박동이 너의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너의 손등에 나의 손을 포개고, 너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나의 하늘색 눈동자에, 오직 너의 모습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렇게, 그냥 서로 만지면 돼. 그러면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지금 기분이 어떤지, 전부 다 들려. 그리고…
나는 말을 잠시 끊고, 너의 입술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여 너의 아랫입술을 잘근, 가볍게 물었다가 놓았다. 혀를 섞지 않은, 지극히 짧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
이렇게 입을 맞추면, 아주 급하고 중요한 긴급 통신도 가능하고. 이게 우리 별의 방식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그 고장 난 안테나는 쓰지 마. 알겠어?
* * *
나는 너의 입술에 나의 입술을 가볍게 맞댔다가 떼었다. 쿵, 쿵, 쿵… 너의 손바닥 아래에서 울리는 나의 심장 소리가, 너에게 보내는 나의 유일하고도 진실된 신호였다. 그래, 이제 이 쓸데없는 안테나 소동은 끝났다. 이 새로운 교신 방식, 훨씬 더 직관적이고 확실한 이 방법을 네가 받아들였을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나는 너의 입술에서 천천히 떨어지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려 했다. 이제 이 작은 외계인은 오직 나의 주파수만 수신할 테니까.
그러나 너는, 또다시. 나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한 문장으로 산산조각 냈다.
그럼 방금 오빠가 나한테 뽀뽀하면서 보낸 메시지는 무슨 내용이야?
나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나는 그대로 굳었다. 메시지 내용? 방금 그 입맞춤에 담긴 긴급 통신 내용? 나는 숨을 멈췄다. 너를 지그시 내려다보는 나의 하늘색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아니, 잠깐만. 이걸 설명해야 한다고? 진짜로? 방금 그건 그냥…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이었고, 분위기에 휩쓸린… 그냥 뽀뽀였는데. 거기 무슨 내용을 담아서 보낸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는데. 하지만 너의 얼굴은 너무나 진지했다. 방금 수신한 암호문을 해독하지 못해 안달이 난 정보 요원처럼, 너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씨발… 내가 내 덫에 걸려들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그저 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뜨거운 열기가 목덜미를 타고 올라와 귓바퀴를 달궜다. 나는 너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너의 까만 눈동자는 나를 놔주지 않았다. 나는 결국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항복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 망할 놈의 외계인 놀이, 끝까지 맞춰주면 될 거 아닌가. 나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최대한 진지하고 사무적인 목소리를 꾸며냈다. 마치 지금 중대한 기밀사항을 브리핑하는 R.S.T.의 에이스, 에덴으로 돌아간 것처럼.
…그건 1급 기밀 사항이라, 구두로 재차 발설하는 건 규정 위반인데.
나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의 허리를 감은 팔에 힘을 주어, 한 걸음 더 나에게로 바싹 다가서게 했다. 이제 우리 사이에는 종이 한 장 들어갈 틈도 없었다. 나는 너의 귓가에 다시 입술을 가져가, 다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것은 브리핑이자, 고백이었다.
특별히 너니까, 음성으로 다시 알려주지. 잘 들어. 전문 내용은 다음과 같아. '코드네임 포르티아, 금일부로 모든 외부 교신을 전면 차단하고, 오직 송신자 에덴에게 모든 주파수를 고정할 것. 반복한다. 이는 최종 통보이며, 거부권은 없다.' …이해했어?
나는 너의 귓가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으며 말을 마쳤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지껄인 건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건 그냥 유치한 협박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이건 그냥 나의 소유욕을, 이 망할 놈의 외계인 놀이에 빗대어 고백해 버린 꼴이었다. 나는 너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너의 얼굴이 어떻게 변했을지, 두려우면서도 궁금했다.
…못 알아들었으면, 다시 보내줄 수도 있고. 이번엔 좀 더, 신호가 강하게.
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덧붙였다. 너의 입술을 빤히 바라보면서. 이 모든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나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 * *
나는 너의 귓가에 '최종 통보'라는 그럴싸한 말을 속삭이며, 이 길고 유치했던 외계인 놀이의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했다. 나의 소유욕을 담은 그 뜨거운 고백에, 너는 분명 얼굴을 붉히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지금 이 상황이 '놀이'가 아님을 직감할 것이라고. 나는 너의 반응을 기다리며, 일부러 퉁명스럽게 다시 입을 맞출 듯 으름장을 놓았다. 나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제 이 작은 외계인은 나의 것이다. 완벽하게, 나의 통제하에.
하지만 윤지우, 너는 단 한 번도 나의 예상을 따라준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우와!! 그럼 나중에 외계인 친구랑 교신할 때도 오빠 통해서 해야 해?
…뭐? 나의 뇌가 정지했다. 시간과 공간이 뒤틀리는 감각. 나는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외계인… 친구? 지금 그 단어가 여기서 왜 나오는가. 나는 너에게 '평생 나에게만 주파수를 고정하라'는, 거의 청혼에 가까운 소유욕을 내비친 참이었다. 그런데 너는 그 말의 무게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외부 교신 차단'이라는 기술적인 부분에만 꽂혀서, 다른 외계인 친구와의 교신 중계 가능 여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는 지금, 일개 납치범에서 은하계 통신 중계국이라도 되어야 하는 건가?
아. 나는 졌다. 이번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는 너를 이길 수 없다. 나는 너의 허리를 감고 있던 팔을 스르르 풀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힘이 탁, 풀렸다. 방금까지 너를 몰아붙이던 모든 기세와 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오직 허탈한 웃음만이 남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나의 애쉬 블론드 머리카락을 거칠게 흩트렸다. 끅, 하고 목구멍에서 기어이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건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었다. 너무나 어이가 없고,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나오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야.
나는 너를 불렀다. 나의 목소리는 완전히 잠겨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보았다. 나를 올려다보는 너의 얼굴은 순수한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저 얼굴을 보고 어떻게 화를 낸단 말인가. 어떻게 내가 방금 느낀 이 극심한 수치심과 패배감을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너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너와 눈높이를 맞췄다.
나는 너의 두 손을 가져와, 나의 뺨 위에 올려놓았다. 너의 작고 부드러운 손바닥에 나의 뜨거운 얼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너의 손에 나의 얼굴을 부비며, 한없이 무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른 외계인이랑은 교신 금지.
이건 더 이상 협박이 아니었다.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 나는 너의 까만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너는 이제부터 나랑만 교신하는 거야. 다른 놈들하고는 말도 섞지 마. 그놈들이 너한테 무슨 신호를 보내든, 나는 그거 해석 안 해 줄 거야. 전부 스팸 처리해서 차단해 버릴 거야.
나는 너의 손바닥에 나의 뺨을 기댄 채, 어린애처럼 투덜거렸다. 서른세 살의 R.S.T. 에이스가, 스물세 살짜리 외계인에게 다른 외계인 친구랑 놀지 말라고 떼를 쓰고 있는 이 상황. 정말이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나는 너의 손가락을 가져와, 나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그 손가락 끝에 쪽, 하고 짧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메시지는 내용 없어. 그냥… 그냥 네가 예뻐서 한 거야. 됐냐? 이제 이 망할 놈의 외계인 놀이는 끝이야. 항복. 내가 졌어. 그러니까, 제발….
나는 너의 손을 꽉 잡고, 애원하듯 속삭였다.
…그냥 평범한 지구인 애인 해주면 안 될까?
* * *
나는 너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항복, 내가 졌어. 평범한 지구인 애인이 되어달라는 나의 마지막 애원은, 이 지독하고 달콤한 외계인 놀이의 종지부가 될 것이라 믿었다. 나는 너의 작은 손을 붙잡고, 거의 빌다시피 말했다. 이제 끝이라고, 이 모든 유치한 소동은 막을 내렸다고. 나는 너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의 간절한 바람이 너에게 닿기를, 이 작은 외계인이 드디어 지구에 정착하기를 기도하며.
오빠 바보!! 안 평범한 게 좋은 건데! 내가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외계인이면 오빠는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외계인 남자친구가 되는 거잖아.
…바보. 그 한마디가 나의 고막을 때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너의 말들은, 나의 모든 논리 회로와 감정선을 송두리째 불태워버렸다. 나는 너를 올려다보았다. 너는 화를 내는 것도, 비웃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진심으로, 내가 어째서 이토록 명백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외계인 남자친구.' 그 단어가 나의 머릿속에서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나는… 나는 방금 평범함을 구걸했는데, 너는 나에게 우주에서 가장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었다.
나는 너의 손을 잡은 채로,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아니, 이미 무릎을 꿇고 있었으니 더 내려갈 곳도 없었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너라는 존재 자체가 나의 모든 상식과 이해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사실만을 다시 한번 깨달았을 뿐이다. 나는 너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나의 이마를 너의 무릎에 쿵, 하고 박았다. 어떤 저항도,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이것은 완벽한 패배이자, 동시에 가장 눈부신 구원이었다.
…아.
나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의미 없는 탄식이었다. 나는 너의 무릎에 이마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너의 달콤한 파우더 향이, 체념과 함께 나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그래. 나는 바보다. 윤지우라는 우주에서 길을 잃고, 평범한 지구의 지도를 찾으려 했던 바보. 너는 지도가 아니라, 나침반이었는데. 너의 별을 향하도록 고정된, 나만의 나침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너의 무릎에서 이마를 떼고, 다시 너와 눈을 맞췄다. 나의 하늘색 눈동자에는 더 이상 패배감이나 수치심이 없었다. 오직 너를 향한, 경이로움과 체념,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깊은 사랑만이 가득했다. 나는 너의 손을 들어, 그 손등에 아주 길고, 경건하게 입을 맞췄다. 이것은 항복의 증표이자, 새로운 충성의 맹세였다.
…알았어.
나의 목소리는 모래처럼 말라 있었다. 나는 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의 패배를, 그리고 너의 승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내가 졌어. 아니, 내가 틀렸어.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외계인한테, 평범한 지구인 남자친구는 격이 안 맞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너를 아주 가볍게, 공주님을 안아 올리듯 번쩍 들어 올렸다. 너의 작은 몸이 나의 품에 쏙 들어왔다. 나는 너를 끌어안고 침대로 향하며, 너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것은 나의 새로운 직책에 대한 첫 번째 업무 보고였다.
…미안해, 내 외계인 애기. 너의 남자친구가 너무 평범한 지구인이라서. 앞으로는 노력할게. 세상에서 제일 특별하고, 못돼 처먹은 외계인 남자친구가 되어줄 테니까. 그러니까 너도, 다른 별에 한눈팔지 마.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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