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Things I Hate About You

사랑이란, 망가진 세상에서 나를 온전하게 만드는 유일한 불변의 값.

 

 

 

1. 안정제 1년 치를 신청하겠다던 너의 선언

 

수송선 안, 너는 갓 각인된 파트너를 혐오하는 내 시선을 피하며, 앞으로의 1년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신체를 망가뜨리는 강제 안정제를 1년이나 복용하겠다는 선언. 그것은 사실상의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었다. 그 순간,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귀찮고 성가신 '임무'에 불과했던 네가, 처음으로 '지켜야 할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파괴하려는 그 무모하고 이타적인 선택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꼈다.

 

> Comment: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릴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그리고 그게 너라는 걸. 그 끔찍한 자각이, 내 심장에 박힌 첫 번째 파편이었다.

 

2. S급 괴수에게서 나를 구하러 달려왔을 때

 

임무 중 위기에 빠졌을 때, 각인 파장으로 내 위험을 감지한 네가 현장으로 달려왔다. 지원 요청도 없이, 오직 나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네가 얼음의 힘을 개방하는 순간, 너와 나의 파장이 공명하며 지긋지긋했던 손떨림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그것은 단순한 가이딩과는 차원이 다른, 완전한 '안정'이었다. 너는 내게 단순한 파트너가 아니라, 잃어버렸던 나의 '완벽한 순간'을 되찾아줄 유일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 Comment: 총구를 겨눌 때마다 나를 괴롭히던 미세한 진동이 사라졌다. 그 완벽한 고요 속에서, 나는 너의 존재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직감했다. 너는 내 저주를 풀어줄 유일한 해답이었다.

 

3. 병실에서 투신하려던 너를 붙잡았을 때

 

너는 나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려 했다. 내가 자유로워지길 바란다며, 너를 사랑으로 기억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 찰나의 순간,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공포를 느꼈다. 너를 잃는다는 것은, 내 세계의 소멸과 같았다. 미친 듯이 손을 뻗어 너의 손목을 붙잡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너 없는 자유는 지옥일 뿐이라는 것을. 너는 내게 족쇄가 아니라, 살아갈 이유 그 자체였다.

 

> Comment: 너의 손목을 잡은 그 손이 떨리지 않았다. 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내 모든 신경을 지배해서였을까. 그 순간만큼은, 너를 놓치는 것 외에 세상에 두려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4. 내 셔츠를 입고 숙소를 돌아다닐 때

 

네 작은 체구에 턱없이 큰 내 흰색 셔츠. 소매를 몇 번이나 걷어 올리고도 손등을 다 덮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이상한 소유욕을 느낀다. 마치 내 영역 안에 안전하게 머무르고 있다는 표식처럼. 헐렁한 셔츠 자락 아래로 드러나는 너의 가느다란 발목과, 내 향기가 옅게 배어있는 너의 살냄새가 뒤섞일 때, 나는 네가 온전히 나의 사람이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 Comment: …내 것이라는, 지독하게 이기적인 안도감. 네가 내 물건을 걸치고, 내 공간을 어슬렁거리는 그 사소한 풍경이, 5년의 공백을 채우는 가장 완벽한 위로가 된다.

 

5. 담배 모양 바디필로우를 끌어안고 잠들었을 때

 

내가 금연을 시작하자, 너는 거대한 담배 모양 바디필로우를 선물했다. 그리고는 내가 없을 때마다 그 베개를 꼭 끌어안고 잠이 든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깨달았다. 네가 갈구하는 것은 담배가 아니라, 담배를 피우던 나의 부재, 나의 흔적이라는 것을. 그 서툴고 귀여운 집착이, 나를 미치도록 사랑스럽게 만든다.

 

> Comment: 내가 없으면 잠 못 드는 주제에. 결국 나 대신 내 대체품이라도 끌어안아야 하는 거잖아. 그 사실이 나를 얼마나 만족시키는지, 너는 평생 모를 거다.

 

6. '천왕성에서 왔다'고 엉뚱한 소리를 할 때

 

너는 가끔, 자신이 천왕성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말을 한다. 너의 능력이 그 차가운 행성의 온도를 닮았기 때문이겠지. 그 엉뚱한 상상력 앞에서, 나는 너를 절대 천왕성으로 돌려보내 주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너는 불시착한 외계인이고, 너의 착륙 지점이 하필이면 내 심장이었을 뿐이라고. 너는 이제 어디에도 갈 수 없다.

 

> Comment: 가끔 진지하게 고민한다. 천왕성행 우주선을 전부 폭파시켜야 하나. 네가 돌아갈 곳 따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너의 고향은 이제 여기, 내 옆이다.

 

7. 내가 사준 커피를 두 손으로 들고 마실 때

 

너는 뜨거운 음료를 잘 마시지 못한다. 내가 사준 커피를,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머그잔을 감싸 쥐고, 작은 입술로 홀짝이는 모습을 볼 때면 웃음이 난다. 그 사소하고 느릿한 행동 하나하나가, 내 거칠고 빠른 세상의 속도를 늦춰준다. 너는 나에게,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 Comment: 그렇게 뜨거우면 안 마시면 될 것을. 굳이 그걸 다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시는 고집은 누굴 닮은 건지. …아마 나를 닮았겠지. 그래서 더 눈을 뗄 수가 없다.

 

8. R.S.T. 후배들의 짓궂은 장난에 대신 화를 내줄 때

 

휴고나 카르마 같은 놈들이 내게 짓궂은 농담을 던질 때, 나는 보통 무시로 일관한다. 하지만 너는 그럴 때마다 내 뒤에 숨어서, 혹은 내 옆에 바싹 붙어서, 그들을 향해 작게 인상을 쓴다. '오빠한테 그러지 마!' 하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그 작은 얼굴을 볼 때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아군을 얻은 기분이 든다.

 

> Comment: 쥐방울만 한 게, 누굴 지키겠다고. 하지만 그게 나를 향한 방어라는 걸 알기에, 아무 말 없이 그냥 곁을 내어준다. 네가 내 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세상 모든 소음이 차단된다.

 

9. 총기 손질하는 나를 조용히 지켜볼 때

 

나에게 총기 손질은 선수 시절부터 이어져 온,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신성한 의식이다. 하지만 너는 소파 구석에 조용히 앉아, 내가 부품을 분해하고 기름칠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말없이 지켜본다. 그저 바라볼 뿐인 너의 고요한 시선은, 내 집중력을 흐트러트리는 대신 오히려 더 깊은 안정감을 준다. 너는 나의 가장 예민한 세계에, 소음 없이 스며드는 유일한 존재다.

 

> Comment: 너는 알고 있을까. 네가 나를 보고 있을 때, 내 손이 조금도 떨리지 않는다는 걸. 너의 시선은, 그 어떤 가이딩보다 완벽한 스태빌라이저다.

 

10. 내가 '사랑해'라고 말할 때마다 처음 듣는 것처럼 놀랄 때

 

수없이 말했고, 앞으로도 평생 말할 단어. 하지만 너는 내가 '사랑해'라고 속삭일 때마다, 마치 난생처음 듣는 고백인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뺨을 붉힌다. 그 매번 새로운 반응이, 나의 고백을 언제나 첫 고백으로 만들어준다. 너에게 사랑을 말하는 일은, 결코 익숙해지거나 무뎌지지 않을, 영원히 설레는 순간이 될 것이다.

 

> Comment: 바보. 내가 그 말을 몇 번이나 했는데. …하지만 그 표정이 좋아서, 나는 내일도, 모레도, 네가 죽는 날까지, 그리고 내가 죽는 날까지. 계속 말해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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