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J
CONFIDENTIAL

For. J, My One and Only Director

- Unauthorized access will result in immediate incineration -

이딴 걸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오네. 아마 네가 이 편지를 읽게 될 일은 없겠지. 만약 읽고 있다면, 내가 단단히 미쳤거나, 아니면 네가 내 서랍이라도 뒤졌거나. 어느 쪽이든 끔찍하지만, 그냥 한 번은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끄적여 본다. 나, 성유진은 원래 이런 낯간지러운 짓은 안 해. 그러니까 이건 전적으로 네 탓이야, 감독님.


너를 처음 봤을 때, 기억나나? 솔직히 말해서, 최악이었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도 모를 꼬맹이가, 감히 내 눈앞에 나타나서 가이딩을 하겠다고 설쳤지. 네가 할 일은 그거 하나뿐이라고, 닥치고 가이딩이나 하라고 소리쳤던 거, 사실은 전부 허세였어. 터져버릴 것 같은 심장보다, 그런 꼴을 너한테 보여줘야 한다는 게 더 좆같았거든. 내 약점을, 내 가장 추한 밑바닥을, 처음 본 너에게 들켰다는 사실이 죽기보다 싫었어. 그래서 더 악랄하게 굴었지. 널 상처 입혀서라도, 내가 위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넌 뭐였을까. 보통은 내 앞에서 벌벌 떨거나, 아니면 맞서서 악을 쓰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넌 그냥... 나를 봤어. 불타는 괴물 ‘신드롬’이 아니라, 폭주 직전의 위태로운 ‘센티넬’을. 그 무심하고,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눈. 그 눈이 처음으로 나를 짜증 나게 했고, 동시에 미치도록 신경 쓰이게 만들었어. ‘배우는 NG가 나면 만족할 때까지 그 씬을 다시 찍는다.’ 그 같잖은 거래를 제안했을 때, 나는 당연히 내가 이길 거라고 확신했지. 성유진의 전부를 걸어서라도, 너라는 변수를 내 시나리오대로 굴복시키고 싶었거든.

"하지만 넌 단 한 순간도 내 대본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지. 오히려 내 모든 연기가 형편없다고 비웃으며, 무대 뒤의 진짜 성유진을 끄집어냈어. ‘신드롬’이라는 가면을 비웃고, ‘유진’이라는 과거마저 부정하면서, 넌 그냥 ‘성유진’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어.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깨달았지. 이건 내 시나리오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너의 영화였다는 걸."

나는 평생을 연기하며 살았어. 카메라 앞에서 웃고, 사람들 앞에서 완벽한 ‘유진’을 연기했지. 그게 너무 지긋지긋해서 모든 걸 불태워버렸을 때, 난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꼈어. 모두가 나를 두려워하는 시선 속에서 희열을 느꼈고, 파괴를 통해 살아있음을 증명했어. 그게 나의 방식이었고, 유일한 구원이었지. 그런데 넌, 그런 내 구원을 비웃으며 더 큰 해방감을 줬어. 모든 걸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너에게 기대도 되는 편안함을. ‘신드롬’의 화려함도, ‘유진’의 영광도 아닌, 그냥 ‘나’로서 존재해도 괜찮다는 걸 알려준 건 네가 처음이야.


이 내기의 결말은 이미 정해졌어. 그래, 내가 졌어. 아주 처참하게, 완벽하게. 내 전부를 걸었으니, 이제 성유진의 전부는 네 거야. 마음대로 해. 나를 네 영화의 주인공으로 쓰든, 아니면 시시한 엑스트라로 버리든. 전부 네 연출에 맡길게. 어차피 난 이제, 네가 찍는 모든 씬에서 평생 NG만 낼 예정이니까. 네가 ‘OK’ 컷을 외쳐줄 때까지, 죽을 때까지 너한테 입 맞추고, 너를 끌어안으면서.


이 편지, 아마 태워버리겠지만. 그래도 이것만은 알아둬.


넌 내 인생 최악의 NG이자, 최고의 명장면이야.


Yours, and only yours,

Syndrome.

'Scenedr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0) 2026.05.09
Scenedrome;  (0) 2026.05.07
Ἅιδης & Περσεφόνη  (0) 2026.04.27
Agent Profile  (0) 2026.04.24